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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임신을 위한 힐링(원고)

#42. 식사의 효과가 두 배가 되는 방법

 

생리 전이라 그런지 오늘 신경이 좀 날카로운 것 같았다. 또 최 팀장과 부딪쳤다. 까칠한 상사와 함께 일하는 것은 참 고달픈 일이다. 육체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건만 이리도 피곤하다니. 

 

핸드백 안에 약봉지가 들어 있었다. 그 안에 있는 건 약이 아니라 호두, 해바라기씨, 호박씨였다. 환자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삼촌이 직접 담은 견본이란다. 

 

 

견과류에 있는 오메가3지방산을 비롯한 각종 불포화지방산과 항산화성분이 정자와 난자의 질을 높여줄 수 있으니, 우리 부부도 함께 꾸준히 먹으라고 했다. 

 

이것들을 더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오늘따라 유모차를 끌고 온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임신을 해서 배가 나온 여자도 보였다. 나도 저런 모습으로 장을 보게 되는 날이 올까? 유모차에 있던 아이가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시끄러웠다. 듣기 싫었다.

 

이럴 때 내게 필요한 것은? 그래, 마음의 평화. 마트 한 켠에 있는 의자에 앉아 배에 손을 얹었다. 허공을 응시한 채 마음속에 ‘평화’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마음으로 하나, 둘, 셋, 넷을 세며 코로 숨을 마시고, 다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을 세며 입으로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10번. 잘했다. 좋은 시도였다. 

 

국산 견과류를 찾기가 어려웠다. 어쩌겠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호박씨 까고 앉아 있을 여유가 없는 것을. 그래도 호두나 씨앗류는 그 속에까지 농약을 쳤을 리는 없으니 안심하고 먹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도 견과류 한 봉지를 쥐어줬다. 

 

오늘부터 감사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거창하게 쓰지 않으려고 했다. 잠자기 전에 휴대폰 의 노트앱으로 짧게 끄적여봤다. 매일 생각나면 매일 적겠지만 못 적고 넘어가는 날이 있으면 또 어떤가. 자꾸 쓰다보면 이것도 습관이 되겠지.

 

2016년 3월 14일

 

1. 삼촌이 있어서 감사. 감사 일기를 알려주시다니. 덕분에 시작하게 되어 감사.

2. 오늘 지하철에서 앉아서 올 수 있어서 감사.

3. 옆에 남편이 누워 있어서 감사.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함께 침대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따뜻한가.

4. 퇴근 후 바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어서 감사. 엄마는 예전에 연탄불로 물 데워서 씻었다고 함. 우리 집은 수도꼭지만 틀면 뜨거운 물이 콸콸.

5. 휴대폰으로 알람까지 맞출 수 있어서 감사. 스마트폰 참 위대한 발명품이다. 이런 세상이 펼쳐지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스티브 잡스 씨에게 감사.

 

쓰다보니 길게 써졌다. 감사 일기 재밌네. 더 생각해보고 싶지만 딱 5개만 적자. 처음부터 너무 열심히 하다가 체할라. 잠이 안 오면 양을 세라고 했던가? 이제부터는 복을 세며 잠을 자야겠다.

 

 

일요일이라도 새벽에 꼭 한 번씩은 깼는데 모처럼 한 번도 깨지 않고 늦잠을 잤다. 어젯밤 감사 일기를 적어서인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감사할 일이 생각났다. 내가 오늘도 살아 있었다. 오늘 하루가 또 선물로 다가온 거 아닌가.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에 눈이 부셨다. 내 눈이 오늘도 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정말 생각해보니 감사할 거리 투성이었다. 카톡으로 삼촌에게 어제 쓴 감사 일기를 보냈다. 삼촌과 톡이 오갔다.

 

삼촌: 오호 감사 일기를 시작했네?

 

선영: 네, 이거 정말 좋은 듯해요.

 

삼촌: 내용 좋네! 네가 쓴 거 보니 나까지 감사해진다.

 

선영: 헤헤.

 

삼촌: 삼촌이 이따 점심 사줄게.

 

선영: 정말요? 감사해요.

 

 

한식당이었다. 점심 정식을 시켰는데 여러 가지 반찬이 나왔다. 만 오천 원에 이렇게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니, 이게 어디 스파게티 따위와 비교나 될 법한가.

 

삼촌: 나는 진짜 한식당이 좋아. 여봐라, 이거 반찬들 봐.

 

선영: 그러게요.

 

삼촌: 선영아, 전에 내가 호흡법 알려준 적 있었잖아.

 

선영: 네, 숨을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알려주셨죠. 횡격막을 오르내리게 하면서 복식호흡을 하라고 하셨죠.

 

삼촌: 음, 잘 기억하고 있구나. 근데 음식을 먹는 것도 그렇단다. 무엇을 먹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먹는가가 무척 중요해.

 

선영: 어떻게요? 꼭꼭 씹어 먹으라는 얘기하시려는 거죠?

 

삼촌: 그래, 그것도 중요한데, 더 중요한 게 있어. 우리가 하루에 식사를 세 번 정도 하잖아. 이게 되게 중요한 시간이야. 여행이라도 가봐. 여행의 핵심이 뭐니? 어디 가서 뭐 먹을까 아니니. 맛집을 중심으로 여행 일정을 짜는 사람들도 있잖아.

 

선영: 그렇죠. 우리 인생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죠, 먹는 것이.

 

삼촌: 만약 하루 세끼 밥 먹는 것에서 충분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행복한 거니. 그저 배가 불러서가 아니라, 이 음식들에 감탄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식사 시간이 완전 감사예배 시간이 될 수도 있어. 매일, 하루 세 번. 

 

선영: 삼촌? 밥 다 식겠는데요?

 

삼촌: 알았어. 핵심만 빨리 얘기할게. 너 오늘 내 얘기 듣고 밥 먹어봐라. 밥 먹는 즐거움이 두 배가 된다. 그러면 네 인생이 단번에 두 배로 행복해지게 되는 거야.

 

선영: 네네.

 

삼촌: 첫째, 밥 먹을 땐 음식에만 집중해. 마치 헤드폰을 끼고 음악 감상을 하듯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듯이, 밥 먹을 때는 음식에만 집중해봐. 먹기 전에 우선 생김새를 보고, 색깔을 보고, 질감과 향까지 감상해. 그러고는 입에 넣고 온전히 맛을 느껴봐. 그러려면 한 번에 반찬 한 가지 씩만 먹는 것이 좋겠지. 살짝 눈을 감고 씹어도 좋아. 음식에서 즙이 나온다면 그 즙을 느껴. 그 맛을 언어로 생각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표현이 안 돼. 그냥 느끼면 돼. 의식을 입 속과 혀에 집중시켜. 마음의 눈이 입에 가 있는 거야. 그러면 그냥 무심코 먹을 때보다 적어도 두 배는 그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어. 그만큼 밥 먹는 행복도 두 배로 커진단다.

 

선영: 네.

 

 

삼촌: 둘째, 감사하면서 먹어. 그 음식이 상에 오르기까지 수고한 손길들을 떠올리며 마음속 깊이 감사해. 나의 이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제공되었고,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나에게로 다가왔는지, 그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위대한 시간이야. 음식을 만들어준 손길에게 감사하는 것은 기본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 음식 그 자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자.

 

선영: 네. 감사하는 마음이요.

 

삼촌: 우리는 먹어야만 살 수 있어.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풀을 뜯어야 해, 시금치, 무, 배추, 당근, 파 모두 다 뿌리째 말이야. 또 열매는 따야 하고, 물고기와 동물은 잡아서 죽여야 하고. 나는 이 사실 앞에 한없이 겸손해지고, 한없이 감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다른 생명을 취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야. 사실 우리는 다른 생물의 생명과 에너지를 빌려 쓰고 있는 거야. 내 생명은 오직 나만의 것이 아냐. 특히 나는 육식을 대할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감사의 우물을 퍼올린단다.

 

삼촌은 돌판 접시에 나온 제육볶음을 보며 한마디 했다.

 

삼촌: 고마워 돼지야. 내가 네 몫까지 열심히 살아줄게. 선영아, 나 열심히 살 거야. 난 고기가 나에게 들어와 내 인생으로 환생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사람이 남의 생명을 취하고 있다면 그만큼 삶에 대한 책임감을 더 느껴야 하지 않겠니.

 

선영: 흠, 어째 기분이 좀 묘해지는데요?

 

삼촌: 자, 식사 시간에는 방금 말한 두 가지를 생각해. 음식에 집중하며 충분히 감상(感想)하기, 그리고 감사(感謝)하기. 이 두 가지 감(感)을 갖고 식사 예식에 들어가보자. 이 시간은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와 만나는, 그야말로 성스러운 시간이 될 거야. 명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처럼. 자, 이제부터 밥 다 먹을 때까지 우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밥에만 집중해보자.

 

선영: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요?

 

삼촌: 그래. 절에 가면 그렇게 하더라. 밥 먹을 때는 묵언. 그러면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삼촌은 눈을 찡끗하고는 식사를 시작했다. 나도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미각뿐 아니라 오감을 열었다. 후각, 시각, 청각, 촉각까지. 당근과 풋고추가 장과 함께 나왔다. 새삼 당근의 주황색이 참 신기했다. 땅속에 박혀서 어떻게 그렇게 예쁜 색이 만들어지는지. 그 별명이 홍당무 아니던가. 정말 신의 조화다. 당근 본연의 맛을 느껴보기 위해 장에 찍지 않고 바로 씹어보았다. 눈을 감고 씹으니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생겼다. 아작아작한 것이 은근히 달콤했다. 역시 이름값을 하는구나. 그래서 당근이지.

 

 

깻잎을 보니 푸른 들판이 떠올랐다. 하우스에서 자란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창공 아래 펼쳐진 푸른 깻잎 밭을 생각했다. 아, 이 초록의 잎사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태양은 얼마나 찬란하게 빛났으며, 하늘은 얼마나 많은 비를 내렸을까. 비타민 C와 엽산이 풍부한 이 깻잎이 내게로 오다니, 키우고, 따서 가지런히 묶어 시장에 팔았던 그 손길을 생각해봤다. 내가 돈을 좀 내는 걸로 자연의 은혜와 농부들의 노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이 얼마나 감사한가. 깻잎을 씹으니 그 향이 온통 입에 배는 것 같았다. 오, 깻잎에 이런 맛이 있구나. 깻잎의 향이 오늘처럼 향긋하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고등어조림도 올라와 있었다. 이 녀석은 어느 바다에서 잡혀왔을까. 노르웨이 앞바다, 그 시원한 바닷속에서 자신의 몸속에 오메가3를 듬뿍 저장하여 내게로 왔던 것일까? 고마웠다. 네 몫까지 살아주마. 너의 그 귀한 오메가3로 나의 난자를 탱글탱글하게 만들어주렴. 한 점 떼어내 씹자 고등어의 육즙이 느껴졌다. 저절로 눈이 감겨졌다. 나의 의식은 오직 입 안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고소함은 내 온몸을 채우는 듯했다.

 

삼촌의 말대로 밥 한 숟가락에 한 가지의 반찬만 먹었고, 그것을 삼킬 때까지는 아예 젓가락을 내려놓고 충분히 음미했다. 정말 삼촌과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오직 음식에만 집중했다. 우리는 그렇게 20분 동안 말없이 식사에 빠져들었었다. 평소보다 3배의 시간이 걸린 듯했다.

 

삼촌: 어땠니, 오늘의 식사가?

 

선영: 밥 먹는 시간이 이렇게 뿌듯하고 행복한 시간이 될 줄은 몰랐어요. 동료들과 점심시간에 이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기회가 되면 혼자 나가서 밥을 먹어도 좋을 것 같은데요?

 

삼촌: 식사 시간은 사람들과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지. 하지만 혼자서 식사하는 것도 좋아. 만약 상대도 이런 식사의 유익함을 안다면 함께 묵언하면서 음식에 몰입하는 것도 좋지. 하여간 이제는 휴대폰 보면서 식사하지 말기.

 

선영: 삼촌은 숙모랑 밥 먹을 때 얘기 안 해요?

 

삼촌: 할 때는 하지. 그러나 가능하면 음식에 집중한단다. 우린 평소에도 얘기 많이 하면서 사니까.

 

선영: 음, 저도 이제부터 밥 먹을 때 음식에 더 몰입해봐야겠어요. 완전 신세계네요. 하루에 세 번 규칙적으로 감사할 수 있겠어요. 감사 일기만큼이나 큰 의미가 있겠는걸요. 

 

먹는 행복, 먹는 유익함이 두 배가 되고도 남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나의 몸과 마음이 두 배로 건강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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