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공기가 아니라 생기야

최 팀장의 짜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았다. ‘독신녀 히스테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진짜 철판을 손톱으로 긁는 것 같았다. 한마디 한마디가 내 온몸의 털들을 일으켜 세웠다. 이걸 디자인이라고 했어? 그녀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귓전을 맴돌았다. 최 팀장은 일을 진행시킬 마음이 없는지 디자인 시안을 보고도 어떻다는 말이 없었다. 게다가 최 팀장은 때가 되어도 도무지 퇴근할 생각을 안 했다. 제시간에 퇴근하면 한심하다는 듯 사람을 노려본다. 오늘도 그 눈길을 뒤통수로 느끼며 나왔다. 정말 숨 막히는 날이었다. 임신하면 바로 그만두고 싶었다. 남편은 회식이라기에 혼자 밥 먹기도 싫고 해서 퇴근길에 삼촌을 찾아갔다.

 

선영: 삼촌은 한의사니까 완전 건강하시겠네요.

 

삼촌: 이 녀석아, 한의사가 뭐 용가리 통뼈냐. 다 똑같은 사람이지.

 

삼촌: 그래도 삼촌은 건강에 대해서 아는 게 많으니까 그만큼 관리를 잘하실 거 아니에요. 삼촌은 어떤 운동하세요?

 

삼촌: 운동? 삼촌이 매일 규칙적으로 하는 게 있기는 하지.

 

선영: 뭔데요?

 

삼촌: 숨쉬기 운동.

 

선영: 에이, 삼촌. 지금이 어느 땐데 아직까지 70년대 유머를…….

 

삼촌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삼촌: 숨쉬기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데. 너도 임신 잘 되려면 숨을 잘 쉬어야 해.

 

선영: 임신 잘 되는 숨쉬기 법이 따로 있나요?

 

삼촌: 오늘 드디어 내가 이것을 너에게 알려주마. 임신이 어디에서 되니, 몸에서 되는 거 아니니.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씨앗이 나오고, 건강한 몸이라야 씨앗을 잘 품지. 그러므로 건강에 좋은 것은 임신에도 다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넌 늘 임신에 좋은 차, 좋은 음식은 무엇인지 늘 궁금해했지? 그런데 입으로 들어가는 것만 생각했지, 코로 무엇이 들어가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

 

선영: 음, 코로 공기가 들어가지, 뭐 다른 게 들어가나요? 하긴 나쁜 공기가 들어가기도 하겠구나. 그렇다고 뭐 코를 막고 살 수는 없고. 공기는 누구에게나 같은 조건 아니에요? 어디 공기 좋은 데로 가지 않는 한 말이에요. 

 

삼촌: 그럴까? 고대 동양문화에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지기(地氣), 즉 땅의 기운이라 하고, 코로 들어가는 것은 천기(天氣), 즉 하늘의 기운이라고 했어. 사람은 그 두 가지 기운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살 수 있고. 둘 다 중요해. 네 말대로 들어가는 공기의 종류를 가릴 재간은 우리에게 없어. 그러나 그 들어간 공기가 제대로 활약할 수 있도록 할 수는 있단다. 

 

선영: 무엇을 숨 쉬는가보다, 어떻게 숨 쉬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인가요?

 

삼촌: 옳지. 바로 그거야. 허나 무엇을 숨 쉬는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저 공기로 숨을 쉬는 걸까? 코 안으로 들락거리는 것이 그저 산소, 질소, 이산화탄소일까?

 

단순히 호흡법에 대한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삼촌: 숨을 쉬면 살고, 숨을 안 쉬면 죽지? 사람이 죽을 때 숨을 거둔다고 하지 않니.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숨 쉬는 것일까? 그게 그저 빌 공(空)자가 달린 공기, 즉 텅 빈 기운을 마시는 걸까? 

 

생각해보니 공기(空氣)라는 의미가 그렇게 해석되기도 했다. 삼촌은 눈을 지긋이 감고는 마치 좋은 꽃냄새라도 맡듯이 고개를 치켜들어 숨을 들이마셨다.

 

삼촌: 선영아, 우리는 텅 빈 기운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숨을 마시는 거란다. 목숨을 이어지게 하는 숨, 우리를 살게 하는 기운을 숨 쉬는 거지. 한자로 표현하면 생기(生氣)다.

 

삼촌은 말이 끝내기 무섭게 내 코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삼촌: 자! 지금 네 코로 들어간 것, 그게 바로 너를 살게 하는 기운이란 말이다. 느껴봐!

 

삼촌은 입을 다문 채 숨을 들이마셨다. 나도 삼촌을 따라 코로 숨을 들이마셔보았다.

 

삼촌: 그저 몸뚱아리 자체에는 살게 하는 기운이 없어. 음식은 며칠을 굶어도 살 수 있지만, 숨을 단 오 분만이라도 쉬지 않으면 바로 죽잖니. 우리는 그저 물질로서의 산소나 이산화탄소를 호흡하는 것이라고 맹맹하게 생각하지 마라. 우리는 생기를 호흡하는 거야. 그 생기는 우주의 모든 생명체를 살아 숨 쉬게 하고, 자라게 하고, 결실 맺게 하고, 변하게 하는 힘이야. 사랑, 생명, 평화가 가득한 기운이지. 천지자연에 가득한 생기가 우리 몸에 들어와서 소통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호흡(呼吸)이란다.

 

나는 그저 공기가 깨끗한지 아닌지만 생각했는데, 숨 쉬는 행위에 이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삼촌의 생각이 신기했다. 

 

삼촌: 공기를 마신다고 생각하는 것과 생기를 마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분이 전혀 달라. 생각은 그저 생각이 아니란 거 얘기했지? 생각은 물질이 되고, 눈에 보이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생각을 잘해야 해. 생각해봐, 숨을 통해 생기를 공급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니. 그저 하늘만 쳐다봐도 감사한 마음이 가득해지지 않겠니?

 

선영: 그러네요. 숨 쉴 수 있다는 것만도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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