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셔츠의 소매가 닳아 있었다. 입은 지 벌써 오래 되었나보다. 오랜만에 백화점에 들렀다.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여자가 보였다. 왠지 모르게 도도해보였다. 유모차가 참 크고 럭셔리하기는 했다. 그 여자가 누군지 모르면서도 괜히 얄미운 마음이 들었던 걸 보면, 내 마음이 꼬여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유모차만 봐도 울컥하고 화가 치밀기도 했다. 유모차를 걷어차버리는 상상을 한두 번 했던 것도 아니었다. 아기가 빽빽 울고 있으면 가서 때려주고 싶기까지 했으니. 백화점에서 나오는 길에 우연히 삼촌을 만났다.
선영: 어머, 삼촌, 웬일이세요? 오늘 쉬는 날이세요?
삼촌: 어, 신발 하나 사려고 나왔지. 오늘 날씨가 무척 덥구나. 너 바쁘지 않으면 빙수 같이 먹을까? 내가 오랜만에 빙수가 좀 당기는데 혼자 먹으려니 좀 뻘쭘하네.
선영: 좋아요. 삼촌이 사는 거예요.
삼촌: 그래, 내가 그 정도 못 사겠냐, 하하.
백화점 앞 건물 2층에 빙수 전문점이 있었다. 주로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찾는 곳인 것 같았다. 멋모르고 빙수 2개를 시켰더니 냉면 그릇만 한 유리 그릇에 빙수가 수북이 쌓여 나왔다. 삼촌은 매우 흡족해하는 표정이었다. 삼촌이 내 쇼핑백을 힐끗 보더니 한마디 던졌다.
삼촌: 너한테도 역시 엄마의 피가 흐르는구나.
선영: 네, 왜요?
삼촌은 잠시 말을 멈췄다. 뭔가를 또 생각하는 듯했다.
삼촌: 너 이 노래 아니? 네가 외국 생활을 오래 해서 이 노래를 아는지 모르겠구나.
삼촌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삼촌: 외식 한 번 한 적이 없었고…… >|^{£$~*\{*^+ 집에 없으면 혼자서…… #%*.*+$#~ 라면……
삼촌은 분명히 노래를 부른다고 했지만 그저 중얼거리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여자애들이 삼촌을 쳐다보았다. 중고생들만 찾는 빙수 전문점에 아저씨와 아줌마가 앉아 있는 것도 이상했을 것이고, 아저씨가 중얼거리는 것도 무척 이상했나보다. 살짝 창피했다.
선영: 삼촌, 그거 노래예요?
삼촌: 아니, 너 이 유명한 노래를 정녕 모른다는 말이냐.
선영: 유명한 노래라고요?
삼촌: 자, 잘 들어봐.
삼촌은 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옆 테이블의 아이들을 의식했는지, 이번에는 좀 작게 중얼거렸다.
삼촌: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아하, 지오디의 ‘어머니께’였다. 삼촌이 나름 랩을 한 거였다.
선영: 지오디 노래예요? 그 노래를 어떻게 그렇게 불러요, 호호. 무슨 비 맞은 중처럼…….
삼촌: 야, 이 노래는 원래 이렇게 부르는 거야. 근데 중요한 건 가사야. 이 어머니를 생각해보라고. 어머니가 짜장면이 정말 싫으셨겠느냐고. 사랑하는 자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거 아니냐.
선영: 맞아요. 저 이 노래 듣다가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 찔끔 난 적 있어요.
삼촌: 그렇지? 찡하지? 근데 나는 아버지잖아. 나는 애들한테 짜장면 싫다고 말 못 하겠더라. 내 몸무게가 애들 두 배니까 애들보다 두 배로 먹는 게 공평한 거 아니냐.
선영: 크흐, 삼촌 하여간 짓궂으세요.
삼촌: 봐라. 이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야. 신이 왜 남자에게는 자궁을 만들어주지 않았는지 아니? 대개 남자는 아이를 품을 만한 본성이 없다. 남자는 내던지는 건 잘해도 품는 건 잘 못해. 하지만 여자는 자기가 다칠지언정 꼭 끌어안고 품는 본능이 있지. 그래서 신이 자궁을 여자 몸속에 둔 거야.
선영: 그렇죠, 여자에게는 모성 본능이라는 게 있지요.
삼촌: 그래, 여자들은 어머니가 될 소질을 갖고 태어나는 것 같아. 너 역시 어머니가 될 소질이 다분하네. 그런데 말이야, 남자인 내가 보기에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어.
선영: 뭐가요?
삼촌: 여자들의 그 희생정신 말이다. 자기 것보다는 자식이나 남편 것을 먼저 챙기지. 방금 했던 노래에 나오는 어머니가 그러지 않았니. 짜장면이 싫다고. 여자들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신은 가족들을 돌보고 아이들을 기르는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하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배워왔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우기보다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을 먼저 보살피는 것, 물론 좋은 미덕이야.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계속해서 미루면서 다른 사람만 우선시하다보면 말이다…….
삼촌은 내 반응을 살피며 말을 끊었다. 나는 눈썹을 들어 올리며 삼촌에게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삼촌: ……고갈될 수 있단다.
삼촌은 이 말을 하고서는 입을 꾹 다물고 내 눈을 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삼촌: 오늘 너의 쇼핑백을 보아하니 네 물건은 눈에 안 띄는 걸? 남편 셔츠만 샀구나. 너 오늘 백화점 둘러보면서 갖고 싶다고 생각한 게 분명히 있었지? 하지만 ‘꼭 필요한 건 아니잖아’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 마음을 꾹 눌렀고.
선영: 삼촌, 점도 배웠어요?
농담 삼아 말했는데, 삼촌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다소 슬픈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삼촌: 너도 네가 하고 싶은 것은 하고, 네가 갖고 싶은 것은 가지면서 살아라.
선영: 삼촌, 어떻게 갖고 싶은 것을 다 사면서 살아요.
삼촌: 그럴 수야 없겠지. 그러나 가끔은 저지르려무나. 너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너는 그것을 누릴 충분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삼촌은 건너편 건물 아래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삼촌: 너 저런 데 가봤니?
네일숍이었다. 수십 번 지나쳤지만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선영: 아뇨, 한 번도 안 가봤어요.
삼촌: 여자들 저런 데 좋아하는 거 같던데? 저기를 지날 때마다 나도 네일아트 좀 해보고 싶어지더라. 내가 여자였으면 당장 들어갔을 거다.
선영: 크, 하여간 삼촌은 간혹 여자보다 더 여자 같다니까요. 저는 매니큐어도 안 칠하고 사는 걸요.
삼촌: 그래서 하는 말이다. 내가 보니까 너는 늘 수수하게 하고 다니더구나. 물론 나는 그런 네 모습이 참 좋아. 그러나 가끔은 자신을 새롭게 대할 필요가 있어. 자신에게 깜짝 선물을 주는 거야.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거든.
삼촌은 다시 네일숍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삼촌: 너 오늘 저거 한번 꼭 해봐. 쓸데없는 데 돈 썼다고 아까워하지 말고. 절대로. 공주가 된 상상을 하면서 다른 아가씨에게 네 손을 맡겨봐. 그 정도 돈은 충분히 쓸 수 있는 너 자신에게 만족하고 감사해봐. 행복한 상상과 함께. 그렇게 30분 동안 앉았다 나오면 마음이 새로워지고, 기분이 좋아질 거다.
선영: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삼촌: 그래. 물론 저기에 허구한 날 앉아 있으면 낭비겠지. 그러나 지금껏 너는 한 번도 안 해봤잖니. 그냥 너 자신에게 예쁘고 재밌는 선물을 주는 거라고 생각해봐. 그렇게 해서 네 기분이 좋아지면 그 효과가 어떨 거 같니?
선영: 효과요?
삼촌: 기분이 좋은 것의 효과는 그저 마음에만 머물지 않는단다. 마음이 즐거우면 몸도 즐거워지지. 기분이 좋고 즐거우면, 혈압이 떨어지고 심장병 발생률이 떨어지고 면역력도 강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숱하게 많단다. 그뿐일 거 같니? 신경이 편안해지고, 몸의 리듬이 순조로워지지. 호르몬도 자연의 리듬을 따라 순조롭게 분비되겠지? 편안한 몸이 되면 새 생명도 쉽게 찾아오는 법이란다.
선영: 오우, 그럼 매니큐어 하고, 오늘 해보는 김에 페디큐어까지 해야겠는걸요?
삼촌: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다.
삼촌은 웃으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삼촌: 선영아, 만약 손톱 손질하고 손톱에 예쁜 그림 그려서 너의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것이 네게 정말 좋은 보약이 될 거야. 네가 만약 약을 삼키면서 기분이 나빠진다면 그 약은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되지.
삼촌은 이 말을 하고는 빙수 위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 숟가락 떴다.
삼촌: 이게 약이 될 때도 있지.
삼촌은 혀를 한 바퀴 돌리며 입가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핥고는 어린아이처럼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삼촌: 너 자신에게 잘해줘. 너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선택해. 너는 그런 선택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곰곰이 생각해보렴. 뭘 하면, 뭘 가지면 기분이 좋아질지. 그게 네 보약이다.
※ 알아두면 큰 도움될 겁니다.
※ 착상이 잘 되도록 하려면
'책, 임신을 위한 힐링(원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 감정은 영혼의 언어야 (0) | 2018.07.16 |
---|---|
#24. 감정이야말로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야 (0) | 2018.07.11 |
#23. 기록되지 않는 생각은 없다 (0) | 2018.07.06 |
#22. 내가 너였어도 그랬을 거야 (0) | 2018.07.01 |
#20. 무한대분의 1이 과연 0일까? (0) | 2018.06.22 |
#19. 기적의 선물 (0) | 2018.06.17 |
#18. 몸의 각성 (0) | 2018.06.12 |
#17. 자궁출혈을 멎게 한 힘 (0) | 2018.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