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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임신을 위한 힐링(원고)

#2. 운명인가?

 

숙모와 아이들은 아직 귀가 전이었다.

 

선영: 삼촌, 저는 아무래도 임신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삼촌: 그 생각을 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지?

 

선영: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려고 해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요. 시험관 아기는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시도라고 생각했어요. 3번이나 했지만 결과는… 아시잖아요. 이제는 이게 제 운명인가 싶어요. 제가 지은 죄가 많아서 하나님이 이런 벌을 내리시나 봐요.

 

삼촌: 죄라고? 벌이라고?

 

삼촌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되물었다.

 

삼촌: 도대체 어떤 신이 죄에 대한 대가를 임신이 안 되는 벌로 갚는다고 하더냐?

 

선영: …

 

삼촌: 신이 그렇게 유치하겠니? 그런 신이라면 차라리 버리자꾸나.

 

선영: 삼촌도 참… 제가 버린다고 신이 버려지나요?

 

삼촌: 그래, 신이 버려지겠니. 내 말은 벌주는 신에 대한 개념을 버리자는 말이다.

 

삼촌은 신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씩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그렇겠지. 하나님이 그런 식으로 벌을 주지는 않겠지. 하지만 오죽 답답했으면 이런 소리가 나왔을까.

 

삼촌: 차나 한잔 할까? 우리 예쁜 조카에게 무슨 차를 대접해드릴까?

 

선영: 뭐든 상관없어요. 그냥 향 좋은 원두커피 같은 거?

 

삼촌: 그래, 커피 향 참 좋지.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어. 묘한 중독성이 있지?

 

삼촌은 눈을 지그시 감고, 커피 향을 맡는 시늉을 하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삼촌: 근데 오늘은 살짝 다른 선택을 해볼까?

 

삼촌은 유리병 하나를 들어 보이며 눈짓을 했다.

 

선영: 그게 뭔데요?

 

삼촌: 좋은 거지. 건강차를 끓여 마시자.

 

선영: 건강차요? 건강에 좋은 차인가요?

 

삼촌: 하하, 그 건강(健康)은 아니고, 말린 생강이야. 생강을 얇게 썰어서 햇볕에 바짝 말리면 그게 바로 건강(乾薑)이지. 몸을 따듯하게 해주는 데 좋단다.

 

 

삼촌은 건강 몇 조각을 넣은 주전자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거실 한 켠에 쌓여 있던 음악 CD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삼촌: 삼촌이 좋아하는 노래야.

 

삼촌은 CD를 나에게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삼촌: 이 노래 아니?

 

아바의 노래, ‘I have a dream’이었다.

 

선영: 알죠. 유명한 노래잖아요.

 

삼촌은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삼촌: 가사도 아니?

 

선영: 첫 구절만요. I have a dream.

 

삼촌: 하하, 그렇지. 나중에 집에 가서 가사 한번 찾아보고 음미해보렴. 너에게 좋은 약이 될 거다.

 

삼촌은 자그마한 찻잔을 준비해서 식탁으로 가져갔다.

 

삼촌: 이리 오렴. 여기서 한잔 하자. 이 자리가 명당이야. 여기서 글을 쓰다보면 스쳐 지나갔던 생각이 다시 솟아올라.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생각이 자연스럽게 다시 떠오르면 마치 보물을 찾은 것처럼 반가워. 또 어떤 땐 이게 과연 내 생각인가 할 정도로 멋진 생각이 들기도 하지. 그게 바로 글 쓰는 맛이란다.

 

선영: 정말 그래요?

 

삼촌: 그럼. 서재에서 쓰는 것보다는 여기 이 식탁에 앉아서 쓰는 것이 더 좋아. 따끈한 차를 마시려면 부엌과 가까운 곳이 좋지. 여기서 아름다운 우리 마누라와 함께 얘기를 나누다보면 멋진 생각들이 많이 떠오른단다.

 

삼촌과 숙모는 완전 닭살 부부다. 결혼한 지 거의 20년이 되었건만 상대에게 소리를 높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삼촌은 찻잔을 들고 건배를 제안했다.

 

삼촌: 장차 태어날 나의 조카 손주를 위하여!

 

나는 피식 웃으며 찻잔을 마주쳤다. 그런데, 윽. 술 마시듯 차를 확 들이켰다 입을 데일 뻔했다. 삼촌이 건배하자고 제의하는 바람에 어이없이 당했다. 삼촌은 화들짝 놀라는 내 모습을 보며 낄낄 웃었다. 그러고는 찻잔을 후우 불고는 여유 있게 한 모금을 마셨다. 

 

 

삼촌은 지긋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삼촌: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니?

 

선영: 운명이 있으니까 운명이라는 말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삼촌: 아까 네가 임신이 안 되는 운명인 거 같다고 얘기해서 말이다.

 

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삼촌: 우리가 살면서 운명이라는 말을 언제 쓸까?

 

선영: 뭐, 글쎄요? 음… ‘너는 내 운명’, ‘내 운명은 이게 끝인가?’라고 말할 때요. 정말 행복하고 좋은 순간 아니면 정말 불행한 순간에 운명이라는 말을 쓰는 것 같은데요?

 

삼촌: 네가 믿는 신은 운명을 미리 정해놓은 신이니?

 

선영: 그렇게 어려운 주제는 저도 몰라요. 저 날라리 신자예요. 그냥 흔히 말하잖아요.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고요. 그래서 해보는 소리예요.

 

나는 시큰둥한 말투로 대답했다. 어릴 때는 삼촌에게 반말을 하며 편하게 지냈다. 하지만 서로 떨어져서 외국 생활을 했던 기간이 길었기에, 아직은 속을 털어놓고 심각한 대화를 나누기 어색했다. 

 

 

삼촌은 잠시 숨을 크게 내쉬더니, 식탁 위에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쓰는 듯했다. 그러고는 살짝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삼촌: 운명에 대해서 무엇을, 어떻게 믿는가, 이것은 그 사람의 운명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단다.

 

삼촌은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삼촌: 운명의 선택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것과 타자에게 있다고 믿는 것은 큰 차이가 있어.

 

선영: 삼촌은 운명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믿으시는군요?

 

삼촌의 말이 약간 거슬렸다. 만약 운명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내 운명은 무엇인가. 임신이 되지 않아 이토록 힘들건만, 이것이 내가 택한 운명이라는 것인가. 아니 어느 누가 이런 기구한 운명을 선택하겠는가.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주변 사람들은 애쓰지 않고도 쉽게 임신했다. 나는 그들보다 더 절실하게, 아니 처절하게 임신을 원했다. 나는 결코 불임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데…

 

삼촌: 지금 네가 임신이 안 되어서 고생하는 것이 네가 선택한 일이라는 뜻은 아니다. 내가 너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삼촌이 내 표정을 읽었는지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삼촌: 너의 운명이 누군가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 있으니 너 스스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식의 결정론적 운명론에 빠지지 말라는 거야. 나는 이런 운명론이야말로 사람을 가장 무력하게 만드는 미신이라고 생각한다.

 

삼촌에게 계속하라는 눈짓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 내일 저녁 너는 중국집에 가서 우동을 사 먹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집에서 된장찌개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을 거야. 만약 된장찌개를 먹게 되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너는 내일 저녁에 된장찌개를 먹을 운명으로 결정되어 있었던 것일까? 네가 대학에서 디자인 전공을 선택한 것이 정해진 운명이었을까? 지금 다니고 있는 광고 회사, 그것도 정해진 운명이었을까?

 

선영: 그런 문제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거죠.

 

삼촌: 맞아, 너는 분명히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지. 지금이라도 그 선택을 철회할 수 있고.

 

선영: 삼촌, 하지만 살면서 마주치는 사람들, 겪게 되는 사건들, 이런 모든 것들을 다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삼촌: 선택과 운명의 메커니즘에 대해서 인간이 그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믿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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