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은 서재 한 켠에서 무언가를 하나 들고 왔다. 보라색 밴드였다. 삼촌은 그것을 손목에 찼다.
삼촌: 자, 여기 뭐라고 쓰여 있는지 봐봐.
선영: A complaint free world?
삼촌: ‘불평 없는 세상’이라는 뜻이지.
선영: …….
삼촌: ‘불평 없이 살아보기’ 프로젝트야. 불평을 하면 이쪽에 찼던 밴드를 반대쪽으로 옮겨야 해. 하루 종일 한쪽에만 계속 차고 있었다면 그날 하루는 불평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지. 목표는 3주 동안 연속해서 한쪽에만 차고 있는 거야. 만약 일주일 동안 한 번도 바꿔 차지 않다가 결국 불평이 나와서 다른 쪽으로 옮겨 차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 3주를 채울 때까지.
선영: 삼촌, 이거 3주 성공했어요? 그래서 이거 안 차고 다니는 거예요?
삼촌: 왜, 갖고 싶니?
선영: 필요 없으면 저 주세요.
삼촌: 사실 나는 3주를 못 채웠어. 다시 시작하기를 몇 번을 했지.
선영: 하하, 저도 그럴 것 같은데요?
삼촌: 이 밴드는 마치 내 생각을 감시하는 보초 같아. 뭔가 입에서 불평이 나오려고 할 때 이 밴드가 보이면 ‘아, 불평하지 말아야지.’ 이 생각을 하게 되지. 흠, 좋은 면이 분명 있기는 한데, 감사보다는 불평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생각나더라고. 결국 3주를 버티지 못하고 바꿔 차야 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어쩔 땐 썩 유쾌하지도 않고. 그래서 그냥 풀어버렸어.
선영: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삼촌: 그렇지만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지? 이 밴드로 불평 없는 세상을 만들어보겠다고 운동을 펼쳤던 사람들이 있으니.
선영: 저도 한번 도전해볼까요?
삼촌: 하하, 해보렴. 나는 표어를 바꿨어. ‘불평을 하지 않겠다’는 표어보다는 ‘미친듯이 감사하자’는 표어가 더 좋더라고. 기왕이면 기분 좋은 단어가 마음속에서 더 많이 울려 퍼지게 하기로 했어. 웬만하면 감사하고, 이해가 안 되어도 이유가 있으려니 생각하고, 이상한 사람을 보면 사정이 있으려니 생각하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고 가능하면 매일 감사 목록을 다섯 개씩 생각해보기로.
선영: 음, 저도 우선은 그냥 감사 일기만 열심히 써볼게요. 근데 삼촌, 감사 일기를 진작 좀 알려주시지, 왜 이리 늦게…….
삼촌: 너 지금 불평하는 거냐?
선영: 아, 제 생각의 습관이 이렇네요. 아니에요, 생각 바꿀게요. 딱 좋은 때에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삼촌: 옳지. 근데 처음부터 네게 감사하라고 얘기했으면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았을걸? 지금은 네가 받아들일 만하니까 얘기해준 거야.
삼촌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자 스피커에서 음악이 나왔다. 또 아바의 노래 ‘I have a dream’이었다.
삼촌: 내가 이 노래에서 제일 좋아하는 가사가 이거야. “a song to sing.” 그저 꿈만 있는 게 아니라 부를 노래가 하나 있다고 하는 거 말이야. 이게 참 멋있어. 흥얼거리고 싶을 때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은 인생에 배경음악 하나가 깔린다는 뜻이지. 숙모가 제일 예뻐 보일 때가 언제인지 아니? 노래할 때야.
선영: 숙모가 노래를 자주 해요?
삼촌: 그렇다기보다는, 숙모가 잘 흥얼거려. 샤워할 때, 화장실 들락거릴 때, 차에 탈 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때가 많아. 그건 숙모의 기분이 좋다는 뜻이지. 그리고 그 숙모의 기분은 곧바로 나에게로 전달되지. 그러니 더 예뻐 보이지.
선영: 음, 숙모는 늘 해피 모드구나.
삼촌: 맞아, 좀 그런 편이야. 삼촌이 숙모한테 홀딱 반한 포인트가 바로 그거였잖아. 생글생글 상냥한 얼굴.
선영: 숙모 예쁘죠.
삼촌: 선영아, 얼굴이 잘생겼는데 인상이 더러운 사람이 있고, 얼굴은 못생겼는데 인상은 참 좋은 사람이 있어. 근데 사람의 마음속에 남는 것은 인상이야. 인상은 표정으로 만들어지고 표정은 마음에 품은 생각으로 만들어져. 인상은 상대방에게 에너지를 전달해. 그것은 하나의 원인이 되어 결과를 만들지. 다시 말해서 나의 인상이 주변 반응의 원인이 되고 그 결과로 내가 맞닥뜨리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거야. 내가 어떤 마음, 어떤 표정, 어떤 인상을 풍기고 사는가에 따라 나의 세상이 나를 마중 나와. 숙모와 나 사이에서도 어쩌면 숙모의 생글생글한 표정이 핵심 연결고리였는지도 몰라.
선영: 흠, 그런가요. 하여간 우리 삼촌, 숙모를 만나서 너무 행복하시구나.
삼촌: 그렇고말고. 숙모 봐라, 화장을 하나도 안 하잖아. 근데도 예뻐 보이는 이유는 숙모의 얼굴에 항상 미소가 있기 때문이야. 미소는 최고의 화장이거든.
선영: 아이고, 그만 좀 하시죠. 삼촌: 진짜 숙모 덕에 돈 버는 거예요. 여자들 화장품값이 얼마나 비싼데…….
삼촌: 그래, 돈 굳었어. 하하.
선영: 삼촌, 제 인상은 솔직히 어때요?
삼촌: 너, 지난 몇 달간 인상이 정말 많이 좋아졌어.
선영: 그래요? 다행이네요. 저 시크하다는 소리 많이 들었거든요.
삼촌: 시크하다?
선영: 제가 좀 부정적이고, 잘 웃지 않는 편이었거든요.
삼촌: 임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네 마음이 좀 어두웠던 건 아니고?
선영: 뭐, 항상 임신 생각을 하고 사는 건 아니지만, 마음속에 큰 짐으로 남아 있기는 하지요.
삼촌: 그래, 왜 안 그렇겠니. 나라도 그랬을 거야.
선영: 그런데 요즘 감사 일기를 쓰고 난 뒤에는 마음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감사할 거리를 생각하다보면 저절로 얼굴에 웃음이 생기더라고요.
삼촌: 그래,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명상과 감사가 습관이 되면 뇌가 바뀐단다. 심지어 뇌가 커지기도
하고.
선영: 지금 이 나이에도 제 뇌가 커진다고요?
삼촌: 그럼, 뇌는 변해. 이걸 전문용어로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고 해. 플라스티시티(plasticity)는 성형이 되는 성질을 뜻해. 플라스틱에 열과 압력을 가하면 모양이 변하는 것처럼 뇌신경 역시 일정한 조건이 만들어지면 변한단다. 이 나이에도.
선영: 처음 듣는 얘기예요.
삼촌: 뇌에는 뉴런이라 불리는 신경세포가 천억 개 이상 있어. 뇌신경세포들은 벽돌처럼 일렬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복잡하게 얽혀 있어. 뉴런이 서로 연결되는 것을 시냅스라고 한단다. 신경세포(뉴런) 하나는 다른 뉴런들과 약 오천 개의 연결고리(시냅스)가 생겨. 쉽게 비유를 들어보자. 너 페이스북 하지?
선영: 네.
삼촌: 페이스북 활동을 많이 할수록 네 화면에 더 많은 소식이 올라오고 친구도 더 많아지지?
선영: 네.
삼촌: 친구 관계는 일종의 네트워크지. 그래서 그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우리말로 표현해서 사회 관계망 서비스라고 하잖아. 근데 페이스북 친구 중에서 네 눈에 더 자주 띄는 친구가 있을 거야. 왜 자꾸 띄는지 아니?
선영: 그 사람이 글을 많이 올려서 그런 거 아닌가요?
삼촌: 그렇기도 한데, 페이스북에는 소식을 노출시키는 알고리즘이 있어. 페이스북은 네가 관심을 더 많이 가지고 클릭해봤던 것, 오래 머물며 읽었던 것, ‘좋아요’를 눌렀던 것, 자주 들어가봤던 사람의 소식을 너에게 더 많이 띄워준단다. 즉 너의 활동 데이터를 분석해서 너의 취향대로 소식을 띄워준단다. 무서운 서비스야.
선영: 그런 거였어요?
삼촌: 페이스북 공간 안에서 네가 어떻게 활동하는지에 따라 어떤 네트워크는 더 강화되고, 또 어떤 것은 또 약화되기도 해. 물론 네가 너의 의지로 친구를 맺을 수도 있고 끊을 수도 있고.
선영: 제 뇌도 그렇다는 말이죠?
삼촌: 그렇지. 네가 어떻게 사고하는가에 따라 너의 뇌신경세포들은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고, 그 연결의 힘을 더 강화시키기도 또 약화시키기도 한단다. 즉 사람의 뇌가 물리적으로 커지지는 않더라도 뇌신경세포들의 네트워크는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면서 변하는거야. 죽을 때까지.
선영: 제가 어떤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에 따라 제 뇌신경세포에도 변화가 생긴다는 말씀이시군요.
삼촌: 맞아. ‘네 마음속에 무엇이 흘러가도록 할 것인가?’ 그것이 너의 뇌구조를 바꾼다는 것을 명심해. 그래서 생각과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그동안 해왔고, 그리고 이제는 적극적으로 감사하자는 얘기를 시작했어. 땅을 자꾸 밟으면 그게 길이 되듯이, 네가 지금처럼 감사를 계속 연습하면 너의 뇌에서 감사 네트워크가 강화되어 길이 생긴단다. 너의 전전두엽이 점점 더 발달하게 되고, 점점 더 감사하는 사람이 되고, 점점 더 얼굴에 미소가 많아지고, 점점 더 행복해질 거야.
선영: 삼촌:하고 이런 얘기 한 지가 벌써 세 달이 지나가네요. 그동안 제 마음도 많이 편안해진 것 같아요. 숨 쉬는 법, 명상하는 법, 그리고 감사 일기까지. 저 달라지고 있는 거죠?
삼촌: 그럼, 너는 계속 변할 거야. 기대해. 너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둘러싼 세상도 변한다. 이 세상이 커다란 뇌라고 생각해봐. 너의 뇌가 변하는 것처럼, 너의 세상, 너의 우주도 변한단다. 페이스북은 신이 이 세상에 보여준 하나의 비유일 뿐이야. 실제 세상은 페이스북과는 차원이 다르게 더 놀랍고 흥미로운 곳이야. 사람들마다 경험하는 것이 다 달라. 그런데 타고난 대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경험하게 된단다. 너도 계속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거야. 이제 네가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선영: 삼촌: 얘기는 항상 뭔가 아날로그적이면서도 디지털적이네요.
삼촌: 하하, 그러니. 사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는 없단다. 이 세상에는 아무 경계도 없어.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구분하면서 살 뿐이지. 경계는 사람들이 지어낸 생각이야.
※ 알아두면 큰 도움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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