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피는 향신료로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동시에 한약 처방에서도 매우 유명한 약재입니다. 약으로 쓰는 계피는 계피나무(cinnamomum cassia) 줄기의 껍질입니다.
계피는 앞서 다룬 생강보다 한 단계 높은 열성을 갖는 약재입니다.
생강은 따듯한 약재, 계피는 뜨거운 약재라고 보시면 됩니다. 계피는 신장(腎臟)의 양기(陽氣)를 북돋아주는 명약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몸의 기운은 음기(陰氣)와 양기(陽氣)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음기는 그늘과 같은 기운으로 서늘하고 촉촉함을 유지시키는 기운이지요. 반면 양기는 햇볕과 같은 기운으로 따듯하고 습해지지 않도록 하는 기운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우리 몸의 상중하 세 군데에 양기의 발원처, 즉 위에는 심장(心臟), 가운데에는 비장(脾臟), 아래에는 신장(腎臟)에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심장, 비장, 신장이라는 용어는 다분히 상징적인 용어입니다. 해부학적으로 눈에 보이는 실질 장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계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외의 조직과 기관 심지어 세포 안에 들어있는 구조물에도 다 심장, 비장, 신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의학입니다.
한의학은 인체를 해석할 때 홀로그램적인 모델을 취한답니다. 인간 자체를 소우주라고 여기고 인체의 각 부분에도 그 안에 전체의 속성이 다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므로 한의학에서 말하는 신장은 콩팥 그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즉, 앞서 말했던 부신, 여성의 난소, 남성의 고환, 전립선의 기능까지도 다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앞서 언급한 비장은 기(氣, 에너지)와 혈(血, 영양물질)을 만드는 양기를 발휘하는 반면, 신장은 생명 현상의 발현과 생식에 관여하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양기를 발휘합니다. 신장이 만드는 물질을 한의학에서는 정(精)이라 합니다. 남성의 정자도 정이요, 여성의 난자도 다 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장의 양기가 떨어지면 생명력과 생식 능력의 저하가 일어나므로, 남성은 정자를 생산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여성은 난자를 배출하는 힘이 떨어집니다. 노화와 더불어 생식 능력의 저하가 일어나는 겁니다.
이럴 때 계피가 기특한 역할을 해줍니다. 계피가 바로 신장의 양기를 북돋아주는 명약이기 때문입니다. 신장의 양기가 허약해지면 아랫배가 차고, 배에서 꾸룩꾸룩 물소리가 나고, 대변이 묽고 설사를 자주 합니다. 복통의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아랫배가 차가워지면서 아플 경우는 뱃속이 냉하기 때문입니다. 계피는 이럴 때 참 좋은 약재입니다.
신장의 양기가 떨어지면 소변 쪽으로도 문제가 생깁니다. 소변이 자주 마렵고 많은 양의 맑은 소변이 나온답니다. 몸이 따듯해야 땀이 나고 피부로도 수분을 발산하는데 몸이 차면 물이 대소변으로만 나가는 것이죠. 평소 허리가 자주 아프고 시린 증상도 신장의 양기 부족과 연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성들의 경우, 신장의 양기가 떨어지면 생리주기가 불규칙해지고 배란이 잘 안 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일례를 들면 다낭성 난소증후군이라는 병이 그렇습니다. 이 병은 난포 하나가 끝까지 자라서 터지지를 못하고, 자잘한 난포들만 여러 개 자라서 끝내 배란이 잘 안 되는 질환입니다. 생리를 몇 달에 한 번씩 하거나 주사를 맞지 않으면 생리를 안 하는 무월경 여성들의 상당수가 다낭성 난소 소견을 보이는데 이것이 난임의 원인 질환으로서 꽤 높은 빈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낭성 난소증후군을 한의학적으로 해석하면 여러 유형이 있는데요, 이 중 신장의 양기가 떨어져서 생긴 유형을 치료하는 데 계피가 도움이 됩니다. 계피를 쓰면 몸에 군불을 때주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불이 지펴지면서 몸 안에 온기(溫氣)가 도니까 배란에도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한편 계피에 들어있는 메틸하이드록시 챌콘폴리머(MHCP)라는 폴리페놀 성분이 기특하게도 혈당을 낮춰주고 인슐린과 비슷한 역할을 해준다고 합니다. 미국 인간영양연구센터의 리차드 앤더슨 박사팀은 애플파이에 계피가 들어있다는 것에 힌트를 얻어 계피에 대한 실험을 진행해보았습니다. 그냥 애플파이를 먹은 사람보다 계피가 들어간 애플파이를 먹은 사람의 혈당이 훨씬 낮더랍니다. 이는 계피가 혈당을 낮춰주는 인슐린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갑자기 혈당 얘기를 꺼낸 이유는 다낭성 난소증후군이 높은 혈당과 인슐린 저항성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다낭성 난소증후군 환자들이 다 인슐린 저항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단 음식을 좋아하거나 무력감을 많이 느끼고 오후 피로가 심하면서 비만인 여성들은 혈당 조절 능력이 떨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이럴 때 계피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2007년 미국의 생식의학학회지인 「Fertility and Sterility」 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15명의 다낭성 난소증후군 여성에게 계피 추출물을 8주 동안 사용했더니 혈당 수치와 인슐린 저항성이 유의성 있게 감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몸에 음기가 부족해서 화가 치솟고, 몸에 열감이 있는 분들은 계피처럼 뜨거운 성질의 약재는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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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아두면 큰 도움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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