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차는 그 문화 코드가 좀 다릅니다. 동양의 차는 흥분을 위해서가 아니라 편안한 이완을 위해서 마셔왔습니다. 다도(茶度)를 지키고 절차를 갖춰가며 마시기도 하구요. 뜨겁지는 않게 그저 따끈한 온기를 갖는 정도로 마셨지요.
임신을 위해서는 따듯한 온기가 필요한 것이지 뜨거운 열기는 불필요합니다.
한약 처방에서 감초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약재가 있으니 바로 당귀입니다. 당귀의 학명은 ‘Angelica gigas NAKAI’인데 앞에 붙은 Angelica는 Angel과 같은 말입니다. 당귀의 효능을 알면 가히 ‘천사의 약재’라 불릴 만합니다.
당귀는 ‘당연하다, 마땅하다’라는 뜻의 당(當)자와 ‘돌아오다’라는 뜻의 귀(歸)자로 이루어진 이름입니다. ‘마땅히 돌아오다’라는 뜻인데 뭐가 돌아온다는 걸까요? 집 나간 남편을 돌아오게 한다는 설이 있습니다. 부인이 당귀를 먹었더니 피부가 고와져서 여러모로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잘하게 되어 집 나가 떠돌던 남편이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이죠.
또 다른 설은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의 품에 당귀를 넣어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전쟁 중에 힘이 빠졌을 때 아내가 넣어준 당귀를 먹고 힘을 내어 잘 버티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얘기죠. 떠도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다 일리 있는 말입니다.
하여간 여자가 먹으면 더 여자다워지고, 남자가 먹으면 더 남자다워지니 참 기특한 약재입니다. 쌈밥집에 가면 당귀 잎파리를 만나게 되지만 약이나 차로는 당귀의 뿌리 부위를 씁니다.
당귀는 그 약성이 부드럽고 따뜻하며 보혈(補血)·활혈(活血)·행혈(行血) 작용이 뛰어난 약재입니다.
뿌리의 몸통 부분은 당귀신(身)이라고 하는데 이쪽은 보혈 작용이 강하고, 잔뿌리 부분은 당귀미(尾)라고 하며 이쪽은 활혈·행혈 작용이 강한 쪽입니다. 대개는 두 가지 작용을 모두 필요로 하므로 굳이 가리지 않고 뿌리 전체를 약으로 씁니다.
보혈 작용은 피를 보충한다는 뜻으로 혈허(血虛, 혈이 부족한 증상)를 치료하는 효과를 말합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혈(血)은 단순히 혈액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영양 성분 및 호르몬 등도 포괄하는 개념이랍니다. 그러므로 혈허라는 말은 영양 부족, 호르몬 부족 상태까지도 다 말하는 것이죠.
여성에게 혈허 증상이 있으면 생리양이 적어지고, 피부가 거칠어지고, 혈색이 칙칙해집니다. 피부는 몸속 상태를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피부가 윤택함을 잃었다는 것은 내장도 윤택함을 잃고 거칠어진다는 뜻이랍니다.
그렇다면 혈허할 때 여성의 난자세포는 어떻게 될까요?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요.
당귀의 활혈 작용은 피를 잘 돌게 한다는 뜻이고, 행혈은 고인 피를 내보낸다는 뜻입니다. 피가 잘 돌지 않아서 고이고 뭉친 것을 어혈(瘀血)이라 하는데 그 상태가 오래되면 염증이 생기고 썩습니다. 이를 ‘괴사’라고 하는데 조직이 활력을 잃고 엉키고 덩어리지는 것을 말하지요.
당귀에는 데커신(Decursin)과 데커시놀(Decursinol)이라는 성분이 들어있는데, 이 성분들은 피가 엉기지 않고 맑게 유지되도록 해주며 혈액순환을 개선하는 효과를 나타냅니다. 또 혈액 속의 유해활성산소를 제거하여 염증과 노화를 방지하는 효과까지 있습니다.
‘자궁이 차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혈허하여 자궁으로 혈액공급이 잘 안 되는 상황을 말합니다. 이럴 땐 자궁내막이 얇아지고 생리양이 적어집니다. 사람을 따듯하게 만드는 것은 피입니다. 피 색깔은 빨간색이죠. 따듯한 색입니다. 손발에 피가 잘 돌아야 손발이 따듯해지듯이 자궁에도 피가 잘 돌아야 자궁내막 상태가 좋아집니다.
자궁내막은 씨가 떨어져 뿌리를 내리는 땅입니다. 이 땅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혈액이 영양이 풍부하고 순환이 잘되어야 임신이 잘됩니다. 그게 바로 자궁이 부드럽고 따듯한 상태랍니다.
자궁에 혈액순환이 잘 안 되고, 자궁으로 들어온 피가 잘 나가지 않는 상태가 되면 자궁에 ‘어혈’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어혈이 생기면 생리통이 심해지고, 생리혈이 검붉어지고, 덩어리가 많이 생깁니다. 당귀는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는 약재입니다.
자궁을 흐르는 혈액순환이 부드러워지면 자궁도 부드러워집니다. 어혈을 치료하는 데는 당귀보다 약성이 강한 한약재들이 있지만 한의사의 진단 없이 장기간 차처럼 마시면 부작용이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귀는 식품재료로 분류될 만큼 약성이 온화하여 별 부작용이 없는 약재이므로 안심하고 드실 수 있습니다.
다만 간혹 소화기관이 허약한 분들은 당귀를 먹은 후 설사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는 연하게 드시거나 섭취를 중지하고 한의사의 조언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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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아두면 큰 도움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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